두 번의 1월, 두 번의 끝: 2025-2026 회고
프리랜서로 일한 지 한 달째,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난 1년 반을 돌아본다.
돌아보면 2025년과 2026년은 나에게 두 번의 1월로 요약된다. 한 번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끝이었고, 한 번은 내가 선택한 끝이었다.
한눈에 보면
- 2025.01 — 3년 반 다닌 회사, 프론트엔드 팀 전원 희망퇴직 (내가 고르지 않은 끝)
- 2025 봄–여름 — 구직과 실패의 반복
- 2025.09 — 스타트업 재취업 (다시 시작)
- 2026.01 — 기대와 다른 현실, 이직 준비와 동시에 퇴사 (내가 고른 끝)
- 2026 상반기 — 두 번째 구직, 그리고 다시 배운 것
- 2026.06 — 프리랜서 활동 시작 (기다리는 대신 만든 시작)
2025 — 내 의지가 아닌 끝에서
1월, 갑작스러운 끝
3년 반. 잘 다니고 있다고 믿었던 회사였다. 인재밀도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고, 나의 성장 곡선도 꽤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2025년 1월, 회사가 경영난을 이야기하며 프론트엔드 팀 전원에게 희망퇴직을 권했다. 이직 혹한기에 많은 회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오히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정든 팀원들과 다들 잘 성장해가던 마당에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섭섭하고 막막한 심정이었다.
슬슬 결혼 준비를 해야 해서 돈을 한창 모아야 하던 시기였고, 그 준비 속에서 서로 안정감을 찾아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이런 변수가 생겨버리니 결혼 준비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빨리 원래의 일상을 되찾고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었기에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봄과 여름, 실패의 반복
봄에는 이직 준비랄 게 되어 있지 않아서 합격률이 좋지 못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다시 점검하며, 원티드에서 좋아하는 도메인을 따라 지원하고 떨어지고 보완하기를 반복했다. 그 시행착오 덕에 이력서의 문제점을 발견해 계속 보완했고, 서류전형 합격률은 꽤 올랐다.
다음은 코딩테스트와 과제전형 대비였다. 코딩테스트는 학부 시절 알고리즘 동아리에서 백준·프로그래머스·릿코드를 돌며 문제를 꽤 많이 풀었고, 재직 중에도 이직 준비를 하며 몇 번 치러봤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실제로 열에 아홉은 합격했다. 골치 아픈 건 과제전형이었다. 당시는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고, React 기반 프론트엔드 스택으로 전향한 지 만 2년이 겨우 넘어가던 때라 지금 보면 한숨이 나올 퀄리티의 코드로 전형을 많이 망쳤다. 합격률은 열에 셋 정도였다.
문제는 면접전형이었다. 여기에 나의 큰 약점이 있었고, 지금도 크게 후회하는 지점이다. 회사를 직접 드러내기는 어려우니 이니셜로 적는다.
F사는 서류–코딩테스트–1차–2차 면접 순이었다. 1차는 CTO가 기술적 트레이드오프와 기본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형이었고, 2차 기술면접은 특이하게 기술면접–심층면접–라이브 코딩테스트 세 세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술면접에서는 React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질문에 진땀을 뺐고, 내 기본기가 많이 흔들린다는 걸 깨달았다. 심층면접은 오히려 아키텍처 디자인을 다뤘는데, 흥미 있는 분야라 티키타카가 잘 됐다. 라이브 코딩테스트는 30분이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간단한 앱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최선의 기술 선택'을 고르는 데 매달리다 결국 다 구현하지 못했다. 기술 선택에 따른 트레이드오프나 그 기술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에, 내가 그동안 개발을 어떻게 해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다행히 면접관이 직접 피드백을 주셨는데, 내가 아쉬워하던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주셨다. 그 뒤로는 그 부분을 중심으로 회고하고 준비했다.
W사는 면접을 하루에 다 보고, 과제전형 설계를 면접관과 함께한 뒤 과제가 끝나는 날 다시 면접관과 리뷰하는 방식이었다. 기술 면접과 컬처핏 면접은 평이했지만, 과제 설계에 대한 피드백과 과제 이후의 피드백이 무척 좋았다. 과제비를 준다는 점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동안 확장성에 대한 고민을 막연히 '좋은 코드를 짜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는 걸 여기서 깨달았고, 덕분에 SOLID 원칙을 다시 공부했다.
그 외에도 여러 회사의 전형을 거치며 인사이트를 얻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잡히기 시작했다. 이런 피드백이 뼈와 살이 되는 과정이라 여기며 다음 전형을 더 탄탄히 준비하려 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얼어붙은 이직시장이었다. 사실상 지원할 수 있는 회사 자체가 줄어들고 있었다. 면접에서 아무리 배운 게 많다 한들 결국 다 떨어진 건 사실이었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최종면접 탈락 4건, 기술면접 탈락 11건, 그 외 다수였다.
쓴맛을 제대로 본 뒤 위기가 한 번 더 찾아왔다. 전세대출을 연장하려니 재직 중인 회사가 없어 연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타의적(?) 백수 생활이 만든 또 하나의 문제였고, 이참에 아예 월세로 갈아타버렸다. (오히려 지금은 만족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퇴직금과 모아둔 비상금, 그리고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원치 않던 방식의 목돈이 생긴 덕분이었다. 희망퇴직이라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여유 있게 버텼다.
좁아진 이직시장의 쓴맛과 전세대출 연장 거절의 아픔을 겪고 나니 어느새 여름이었다. 더운 와중에도 포지션이 나오는지 수시로 확인했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부하며 지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를 힘들게 한 건 더위도 이직시장도 아니었다. "같이 일하던 팀원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왜 못 잡지?"라는 자괴감이었다. 처음에는 백수 라이프를 탈출하는 팀원들을 축하해줬지만, 결혼도 밀리고 재취업도 안 되는 나를 보면 점점 조급해졌다.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면접 스터디도 집중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든 개발자 커리어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남았고, 그러다 보니 면접 퀄리티는 떨어지고 복기도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9월, 다시 시작
그러던 중 다행히 학부 때부터 하고 싶었던 IoT 도메인 회사의 면접을 봤고, 드디어 합격했다. 전 직장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개발 여건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도 않았지만, 꽤 높은 연봉 상승 폭과 스톡옵션을 생각하면 나름 잘한 이직이라 여겼다.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주고 멘탈을 붙잡아준 여자친구에게 무엇보다 고마웠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알렸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마음고생으로 힘들었던 여름을 견뎌내고 드디어 풍족한 가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나였다.
2025년 9월, 마침내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 그동안 받은 심적 고통이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고, 미뤘던 결혼 계획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여자친구와는 사이가 전보다 더 좋아졌고, 커리어를 되짚어보며 생각의 깊이도 깊어지는 게 체감됐다.
일상에는 만족하고 있었고 새 회사에도 슬슬 적응해가던 시기였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개발자로 일하던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랬고, 결국 짧은 재직 기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 IoT 플랫폼임에도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점 (면접에서 들었던 것과도 달랐다)
-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프로덕트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고, 나의 성장을 그리기 어렵다는 점
- 여전히 남아 있는, 이루고 싶은 목표
재직 기간이 짧은 만큼 이직 사유를 철저히 준비해야 했고,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기업 몇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솔직히 재직 기간이 너무 짧아 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세 번 넣어 세 번 다 서류에 합격했고, 코딩테스트와 면접까지 이어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L사였다. 유명한 회사의 계열사였는데, 철저히 준비한 만큼 최종면접까지 순식간에 올라갔고, 목표한 성과를 내고 올해는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면접 내용을 복기하며 내린 결론은 이랬다.
- 이직에 대한 간절함이 오히려 없었다는 것
- 컬처핏 면접이라고만 생각했지, 기술면접 심화 버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실제로 PO·CTO·CEO 세 분이 들어오셨는데, PO분이 기술면접을 아주 깊게 진행하셨다)
- 내 답변에 돌아올 콜백 질문에 대한 대비가 완전하지 못했던 것
여러모로 아쉬운 면접이었지만, 덕분에 앞으로의 계획을 더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이후 한 달 정도를 다음 준비 기간으로 삼아 낮에는 바쁜 회사 업무에, 밤에는 개발 공부와 기본기 훈련에 집중했다. 백수 시절에는 갖지 못했던 정비 기간을 재직 중에 갖게 되니, '선이직 후퇴사가 정배'라는 말을 제대로 체감했다. 그렇게 11월까지 큰 깨달음을 얻었고, 연말과 연초는 바쁘지만 따뜻하게 보냈다.
2026 상반기 — 이번엔 내가 고른 끝
1월, 기대와 현실의 간극
2026년 1월 초, 예년처럼 많은 회사의 공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원하던 기업들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했으니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고, 회사에 대한 아쉬움이 커질수록 그 마음도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지금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이직으로 기대하는 것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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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
- 안정감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 커리어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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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체감하던 단점
- 물경력이 될 수 있을 정도의 느슨함
-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얻어갈 인사이트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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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에 기대하는 점
- 가파른 성장 곡선
-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의 보람
- 좋은 동료들과 일하며 얻는 인사이트
이직 사유를 정리하고 기다리던 회사들의 서류를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사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는지 찾아봤다. 불편한 점이나 개선할 점이 보이면 CTO님께 적극적으로 건의하며 개발 문화를 바꿔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고, 관성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슬슬 지쳐갔다. 그 무렵 나와 가깝게 지내며 고민을 들어주던 QA 팀장님과 QA 팀원분이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나누고, 함께 개발 문화를 바꿔보려던 분들이었기에 더 그랬다. 구체적인 사정을 블로그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그분들이 불만을 많이 쌓아오셨던 건 분명하다. 나도 그랬고 말이다.
그렇게 이직 준비를 시작했지만, 회사에 너무 지친 나머지 —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후회하는 — '선퇴사 후이직'을 저질러버렸다. 결국 2026년 1월, 나는 다시 끝을 마주했다. 다만 이번엔 내가 선택한 끝이었다.
안정성만 보면 작년으로 되돌아간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훨씬 크게 성장했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선퇴사'라는 형태는 후회해도 퇴사라는 결정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때에 비해 독기가 올라 있었다.
다시 구직
다시 이직시장에 나왔다. 같은 구직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확실한 동기가 있었고, 어떤 회사가 나와 맞는지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구직하며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세 가지였다.
-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회사
- 성장의 동기부여가 되고,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회사
- 같이 프로덕트를 만들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회사
전 직장에 다니며 준비했던 회사들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고(물론 퇴사 전에도 두드렸다), 합격률이 이전보다 높아진 게 체감됐다. 그중 인상 깊었던 회사 네 곳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커머스 도메인, K사. 뒤에서 이야기할 M사의 경쟁사 같은 곳이다. 평소 이 회사의 앱을 많이 써봤기에 커머스에 도전한다면 여기서 하고 싶었고, 지원해서 기술면접을 봤다. PO분과 개발팀 리더분이 들어오셨는데 생각보다 협업 관련 질문이 많았다. 다양한 직군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회사라는 게 느껴졌고, 그쪽 대비가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본다. 그래도 이 면접 덕분에, 다른 직군과 이야기하며 기술을 선정할 때 어떤 고민을 했어야 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핀테크 도메인, D사. 당시 한창 화제이던 회사라 들어가기만 해도 크게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과제전형부터 기술면접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기술면접은 1시간 반 동안 기술 선정에 대한 고민을 깊게 파고드는 자리였는데, 내 고민의 깊이가 회사가 기대하는 수준보다 얕았던 것 같다. 또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기술 선택의 이유를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다 본질을 흐린 것도 탈락 원인이었다고 본다.
커머스 도메인, M사. 앞서 이야기한 K사와 경쟁 구도에 있는 회사이자, 누구나 일상에서 자주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곳이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면접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전형이 다르다는데, 나는 프리인터뷰 → 기술면접 → 컬처핏 면접 순으로 진행했다. 프리인터뷰에서는 라이브 코딩테스트와 기술 토론을 했는데, 합격이라는 시그널을 너무 크게 받아버렸다. 이때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기술면접(1차)은 라이브 코딩테스트와 시스템 아키텍처 디자인 두 섹션이었다. 라이브 코딩테스트는 간단했지만 머릿속 생각을 최대한 끄집어내려 했고, 시스템 아키텍처에서는 내 기술적 판단을 트레이드오프까지 포함해 자세히 설명했다. 솔직히 이때는 기술면접을 찢(?)었다고 느꼈고, 역시나 합격이었다. 컬처핏 면접은 CTO 세션과 PO 세션으로 나뉘었다. CTO 세션에서는 기술적 판단과 기술 이야기를 주로 이어갔고, PO 세션에서는 기술적 판단을 다른 직군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불길했던 건 CTO 세션이었다. PO분과는 공감대가 많아 좋았는데, CTO분과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복기해보면 나를 PR하는 데 집중했지, 깊이 있는 기술 토론이 되지 못한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PO 세션이 잘 풀린 건 K사에서 큰코다쳤던 부분을 보완한 덕이라고 본다. (물론 복기하며 든 생각일 뿐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은행 도메인, T사.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다. 주니어 때부터 꾸준히 재도전하며 과제전형에서 고배를 많이 마셨던 곳이기도 하다. 그 과거 때문에 프론트엔드 개발 역량을 키우려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드디어 기술면접 기회를 받았다. 너무 가고 싶던 회사라 가슴이 벅찼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과제에서 내린 기술적 선택을 잘못 설명하는 바람에 면접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과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 기술 선정의 근거와 장단점까지는 잘 풀어냈지만 대안에 대한 설명이 부실했다. 그 부실함을 메우려다 설명이 장황해졌고, 거기서 빈틈이 계속 생기며 면접을 망쳐버렸다. 면접이 끝나고 기회를 날렸다는 생각에 일주일을 패닉 상태로 지냈다. 그래도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계열사에 지원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면접 피드백 덕분이었다. 피드백은 내가 스스로 짚었던 그대로였다.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아주 상세하게 짚어주셨고, 그걸 토대로 앞으로의 면접이든 기술 토론이든 방향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곳에서 면접을 봤고, 원하는 처우나 조건이 아니어서 가지 않은 곳도 있다. 그래도 작년의 백수 생활보다 행복했던 이유는, 작년이 '원치 않은 이직'이었다면 올해는 '내가 원하는 이직'이었고 방향도 '원하는 선택'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고, 다른 도전도 해보고 싶어졌다. 특히 개발자로 일하며 한 번쯤은 프리랜서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6월, 프리랜서라는 선택
2026년 4월부터는 프리랜서라는 경로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티드 긱스와 위시켓에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봤고, 프로젝트 세 개를 골라 지원했다. 처음 해보는 선택이라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두근거림도 있었다.
그중 두 프로젝트에서 면담 요청이 왔고, 목표가 명확하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 하나를 골랐다. 그게 지금 하고 있는 프리랜서 업무이고, 현재까지는 만족하고 있다.
이 업체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 대표님의 목표가 명확하고, 개발자에게 확실한 인사이트를 주시는 분이었다.
-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회사에 상주하며 일하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점은 이렇다.
- 동료들이 무척 열심히 하고(워라밸은 잘 안 지키시는 편이지만..) 인재밀도도 생각보다 훨씬 좋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판교에 있어서, 가고 싶은 회사들을 매일 마주하며 목표의식을 다지기 좋다.
-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업무가 주어져서 개발이 즐겁다.
덕분에 글을 쓰는 시점으로 프리랜서 한 달째, 여전히 후회 없이 즐겁게 일하고 있다. 3개월짜리 단기 계약이라 이후에는 다시 구직해야 하지만, 이 선택은 회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잠시 쉬어가면서도 실무 감각을 유지하며 나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누군가가 예전의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잠시라도 프리랜서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 프로젝트나 잡으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제대로 해낼 수 있으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말이다.
두 번의 1월이 나에게 가르친 것
작년의 1월이 '잔인하지만 성장의 필요성을 알려준 1월'이었다면, 올해의 1월은 '그동안 얻은 깨달음을 정리한 1월'이었다. 둘 다 원하던 회사로의 이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번의 끝을 겪으며 나는 프리랜서로 잠시 방향을 틀었고, 그 안에서 성장을 이어가기로 했다.
두 번의 1월을 지나며 배운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 기본기는 언제든 바닥까지 파인다. F사에서 React 밑바닥 질문에 흔들리며 뼈저리게 느꼈다.
- 기술 선택은 트레이드오프와 대안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장황한 설명은 빈틈을 메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드러낸다. D사와 T사에서 배웠다.
- 내 답변이 부를 콜백 질문까지 대비해야 한다. L사 최종면접의 교훈이다.
- 선이직 후퇴사가 정배다. 재직 중의 정비 기간이 얼마나 귀한지 두 번의 구직으로 체감했다. 그런데도 한 번 더 저질렀으니, 두 번 배운 교훈인 셈이다.
작년의 잔인한 1월은 어중간한 준비에 대한 후회와 급하게 이직할 때 생기는 문제를 가르쳐줬고, 올해의 1월은 내 방향성이 확실하게 잡혀간다는 확신을 줬다.
남은 2026에게
올해 기회가 된다면 다시 원하는 기업의 문을 두드리든가 커피챗으로 알아보려 한다. 다만 프리랜서로서의 성장도 경험해봤기에 고민은 좀 될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의 목표는 전자다. 그 목표를 이루면서 해보고 싶은 것도 여럿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끊을 생각은 없고, 나아가 프론트엔드를 넘어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도 확장해가고 싶다. 올해 초에 그런 넓은 생각을 많이 해뒀으니, 남은 올해는 하고 싶은 목표를 이뤄 따뜻한 겨울을 맞고 싶다.
